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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림의 강단

겸손으로 삶을 살아가라

2023년 3월 12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8:14)

본문의 비유는 성전에 예배드리러 간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은 모두 신앙인처럼 보였고 신앙인처럼 말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자기 자신을 높였고 다른 사람들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자기가 강도가 아니고, 간음을 한 자도 아니고 세리도 아닌 것을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바리새인은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행동 뒤에 있는 동기를 평가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뿐만 아니라 행위의 동기에도 관심이 있으십니다. 즉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겸손히 은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의’를 드러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바로 교만입니다.
반면, 세리는 자신의 죄를 깊이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구했습니다(눅 18:13). ‘겸손’은 우리가 은혜로 그리스도인이 된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생활도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교만한 사람의 기도는 자기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교만한 사람의 기도는 자기의 입술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의 기도는 강력합니다. 겸손은 하나님의 관심을 끌어당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시온 챌린지 아이들 만나길 바라는 예수님 마음 담아

누가복음 18:9~15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15.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 광림교회 담임목사 김 정 석
    kwanglim-sp@hanmail.net
첫째, 겸손은 자기 죄를 고백하는 데 빠르고, 교만은 다른 사람의 죄를 지적하는 데 빠릅니다.

본문의 세리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에 애통해하며 하나님께서 죄인인 자신을 긍휼히 여겨 주시기만을 간구했습니다. 겸손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깊이 돌아보게 합니다. 반면에, 교만은 죄를 고백하는데 느리고 다른 사람의 죄를 지적하는데 빠릅니다.
우리는 본문의 바리새인이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눅 18:11)라고 기도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외면적인 행위는 올바르게 보였지만, 내면적으로 그의 마음은 교만과 이기심으로 황폐해져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동정심이나 긍휼을 알지 못했습니다. 오직 자기 방식만이 옳다는 교만함 가운데 있었습니다.
교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처럼 보고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잘못된 것이다. 내가 옳다.” 그러나 겸손은 하나님이 옳으시다는 것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에 주저하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천국에 갈 때까지 다른 사람들로부터 완전함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신도 누군가에게는 원수가 될 수 있고, 아픔과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어주지 못할 때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겸손은 남의 부족한 것을 찾기보다 자기 죄를 고백하는데 빠릅니다.

둘째, 겸손은 사람들에게 드러나지 않더라도 만족하는 마음입니다.

세리는 멀리 서있었습니다(눅 18:13). 자신의 모습이 비록 다른 사람들 보다 드러나지 않더라도 진실하게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만은 언제 어디서나 주목을 받으려 합니다. 하나님을 위한 희생과 봉사에 대해 하나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알아주기를 원합니다. 바리새인들은 회당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서 자기들이 잘 보이길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교만한 사람들이 사람들의 칭찬받기를 좋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사람들의 칭찬이 그들의 상급이고 그 이상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사람들의 칭찬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천국에서 상급이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지금 당장 자신의 행실이 드러나지 않더라도 만족합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만족이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께 붙잡힌 바 되어 겸손하게 주의 뜻을 이뤄나갈 때 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주시는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셋째, 겸손한 자는 의롭다고 인정을 받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두 번째 편지에서, 바울은 자신에게 있는 ‘육체의 가시’를 언급합니다. 아마 신체적인 어려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에게 불편함과 걱정을 일으키는 문제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그것을 없애주시기를 간절히 구하였습니다. 주님께 그 가시를 제거해 주시기를 세 번 간구한 후에, 바울은 자신에게 허락된 가시 즉 고난의 이유에 대해 발견하였습니다. 바울이 자신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시간 동안에, 하나님은 그 ‘가시’의 이유를 계시해 주셨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12:7).
하나님은 바울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어떠한 일꾼이 될 것인가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자아가 그의 사역에 방해되지 않을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 '육체의 가시'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 육체의 가시는 바울의 인기와 영적인 특권으로 인해 자신을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예방 조치였습니다.
하나님이 사도 바울을 얼마나 사랑하셨을까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신약의 절반을 사도 바울이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또한 그에게 육체의 가시를 허락하셨습니다. 그의 특권과 고통을 함께 이해하려면 하나님이 교만을 얼마나 싫어하시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고난을 사용하셔서 우리를 겸손하게 하십니다. 주님은 겸손한 자를 의롭다 인정해 주십니다. 본문에서도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눅 18:14)고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높아지기보다 겸손함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실 것입니다. 우리를 의롭다 인정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겸손함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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