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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림의 강단

끝을 넘어서는 믿음

2026년 6월 28일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마 9:25)

여러분, 믿음이 무엇일까요? 히브리서 11장 1절 에서 믿음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보지 못하고 더 나아가 볼 수 없기에 믿는 것, 이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끝나면 맹목적인 믿음으로 끝이 납니다.
깊어지는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인식의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가지면 가질수록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살려 주셨고, 그 십자가의 은총을 바라볼 때마다 나를 사랑하고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러한 인식 위에 믿음이 생기는 것이요, 기독교가 말하는 참된 모습의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치유 사건 가운데 하나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간단하게 설명되어 있지만,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에서는 조금 더 자세하게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8장 40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열두 해 동안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나타나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듦으로써 병이 낫게 되고 이 일로 인하여 야이로의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늦어지게 됩니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집으로 향하던 길에 그의 집으로부터 사람이 와 길을 멈추게 하고 야이로에게 말합니다.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마소서 하거늘”(눅 8:49).
예수님께서 도착하시기 전에 딸이 죽었습니다. 인간적인 마음으로 생각한다면 혈루증 여인을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야이로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눅 8:50)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는 발걸음을 재촉하시어 야이로의 집에 도착하여 어린 소녀를 보시고 “아이야 일어나라”(눅 8:54)라고 말씀하십니다.

인생의 끝에서 새롭게 회복시키시고 기적을 베풀어 치유하신 기적의 사건이 바로 오늘의 말씀입니다. 오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의 죽음에서 생명을, 그리고 회복과 더불어 치유의 역사를 베푸시게 하였던 믿음이 무엇인지 함께 은혜를 나누고 기도의 제목을 삼고자 합니다.

시온 챌린지 아이들 만나길 바라는 예수님 마음 담아

마태복음 9:18~26
18.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19.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20.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21.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22.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23.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24.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25.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26.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 감독회장  김 정 석
    kwanglim-sp@hanmail.net
첫째, 살아있는 믿음이 절망을 넘어서게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간단하게 딸이 죽었음을 기록하고 있지만, 누가복음 8장 50절에는 딸이 죽었다고 하인으로부터 전갈을 받은 야이로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님께서 야이로에게 말씀하신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은 무엇일까요?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반응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이라는 것은 내가 믿은 것에 대한 신념이 아니라 신뢰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이것을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확신이기도 하고 인격에 대한 신뢰가 믿음입니다.

회당장 야이로가 어떻게 예수님께 나왔습니까? 예수님의 이적을 믿는 믿음, 즉 다른 사람에 의해서 들었던 객관적인 사실에 의거하여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믿음이지만, 이것으로는 기적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객관적인 사실을 내 것으로 만들 때 역사가 일어나며, 이것이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2000년 전의 사건이 오늘 내 삶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것이 살아있는 믿음이요, 여기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둘째, 예수와 함께 걸어가는 믿음 가운데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야이로와 함께 가셨습니다. 야이로의 걸음에는 소망이 넘쳤습니다. 그런데 걸어가는 중 예기치 못한 사건을 만나 결국 딸이 죽게 됩니다. 예수님은 왜 야이로의 집을 가는 도중 예기치 못한 사건을 허용하시고 걸음을 지체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지체하신 이유는 야이로의 믿음의 중심을 되돌아 보게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야이로가 예수님께 나온 동기가 단순히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함인지, 예수님의 능력으로 삶의 일시적인 괴로움과 절망을 해결하기 위함인지 되돌아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새벽을 깨우며 호렙산 기도회에 참여하여 기도합니다. 열심히 기도하지만, 응답이 들리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기도에는 응답하시지만, 유독 내 기도에만 응답하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내 기도에만 응답하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를 한 번 돌아보라는 하나님의 응답이신 것입니다.
기도에 더디 응답하시는 하나님, 그 이유는 굳센 믿음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일시적이고 감정적인 믿음이 아니라 흔들림 없고 참고 견디어 내는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신 기회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걸어 간다는 것은 살아있는 성장의 관계를 누린다는 것입니다. 동행의 여정 가운데 믿음의 참된 모습인 자기부정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자기부정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로 나타나게 되며 여기에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철저한 자기부정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을 비워 자신을 부정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채우는 것, 이 믿음을 갖고 주님과 함께 걸어갈 때, 인생에 새로운 기적을 경험하게 되는 복된 삶이 되는 줄 믿습니다.


셋째, 변함없는 믿음의 사람에게 기적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막 5:35). 이제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살아있는 믿음도, 자기부정을 통해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는 믿음도 자신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에 소망과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가셔도 소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절망 가운데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막 5:36). 어법을 보면 ‘현재 시제’로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해서 믿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궁극적인 절망 가운데서도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해서 믿으라”
아무리 절망과 좌절이 인간의 능력의 한계가 우리를 둘러 싸고 있다 할지라도, 삶의 무기력함과 어둠이 몰려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지라도 주님은 우리 곁에 오셔서 새로운 힘과 용기를 주십니다. 그리고 그 속에 치유함과 더불어 기적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죽은 딸을 향해 잔다고 말씀하신 예수님, 그리고 “소녀야 일어나라”라고 말씀하시어 절망 가운데서 다시 새로운 생명을 허락하셨습니다. 이처럼 살아있는 믿음, 자기부정을 통하여 예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변함없이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 아무리 절망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우리 주님은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허락하십니다. 견고한 믿음을 지키며 믿음으로 한계를 넘어서 극복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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