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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이야기

이익상목사와 함께하는 이스라엘 성지순례 이야기

성지순례 이야기 35

마사다와 유대인 항쟁

로마군이 건설한 비탈길 - 로마군들은 유대인들을 노예로 잡아다가 3개월에 걸쳐 이 비탈길을 만들었다.

로마군이 건설한 비탈길 - 로마군들은 유대인들을 노예로 잡아다가 3개월에 걸쳐 이 비탈길을 만들었다.

유다에 로마가 직접적인 통치를 시작하던 때부터 로마에 대항하는 많은 항쟁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유대인들의 반로마 항쟁은 예루살렘 성과 성전의 멸망을 야기시켰던 66년의 항쟁이지요. 이 전쟁은 “제1차 유대-로마 전쟁” The First Jewish-Roman War 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대항쟁” The Great Revolt 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 항쟁의 원인은 하나님 뿐 아니라, 성전에서 황제에게도 신과 같은 급의 경의를 표해야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라는 종교적인 이유를 들기도 하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너무나 혹독한 로마의 세금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마사다는 대항쟁이 시작이되던 66년에 열심당 중에서도 매우 과격한 분파였던 시카리 Sicarii 에 의해서 점령됩니다. 시카리라는 말은 라틴어 시카리우스 Sicarius 의 복수형인데, 그 의미가 “단검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옷 주머니에 늘 단검을 지니고 다니면서 언제라도 싸울 준비, 급습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는데, 이 시카리의 지도자는 엘르아잘 벤 야이르 Eleazar ben Yair였습니다.

마사다 회당

마사다 회당

티투스를 이어서 로마군을 이끈 실바 Silva 가 유대인 반란군의 마지막 무리들이 모여있는 마사다로 72년에 진군을 해 옵니다. 15,000명의 로마군들이 고작 960명의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그만큼 마사다가 로마인들에게는 매우 상징적으로 중요한 곳이었고, 그만큼의 병력이 있어야 점령할 수 있는 곳이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무리 마사다가 천혜의 요새라고 하지만, 여름이 되면, 40도를 훌쩍 넘는 온도에 그늘 하나 만들어 줄 나무 없는 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66CE에 시작된 유대인들의 항쟁이 70년에 예루살렘의 함락으로 일단락 지어진 후에, 70CE부터 73CE까지 약 4년여간을 이 마사다에서 살아야했을 유대인 최후의 반란군들의 팍팍한 삶은 굳이 상상하지 않았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바도 바로 그 점을 간파했습니다. 마사다 요새를 올라가기는 힘들지만, 그 많은 인원이 그 위에서 얼마나 버틸까 하며 마사다를 포위하고 사람들을 고사시키는 작전을 감행한 것이지요. 아직까지도 실바의 로마 제 10군단이 만들어 놓은 마사다 주변의 로마군 진지와 마사다 안에 있는 사람들이 생필품이나 군수 물자를 외부에서 옮겨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마사다를 360도 둘러싼 로마군의 포위 담이 고스란히 광야에 남아있습니다. 지금도 보면서 감탄할 만한 로마군들의 위엄 앞에서 2,000여 년 전의 유대인들은 또 얼마나 위축되었겠습니까만, 결과적으로 로마군의 작전은 실패였습니다. 마사다에는 충분한 물자가 이미 넉넉히 준비된 데에다가 헤롯은 마사다에 엄청난 양의 물 저장고들을 만들어 놓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실바는 직접 마사다 안으로 진입하기 위한 군사적인 용도의 비탈길을 만들기로 결정합니다. 비탈길의 위치는 비록 깎아지르는 절벽이기는 하지만, 가장 적은 공사기간이 소요될 서쪽 절벽을 선택합니다. 실바는 유대 땅에서 유대인들을 노예로 삼아 3개월에 걸친 대공사를 시작합니다.

마사다 안에 있었던 시카리들은 이 공사를 그저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고 하네요. 물론 적극적인 공격으로 공사 자체를 방해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 공사에 동원된 노예들이 모두 자신들의 형제들인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에 제대로된 공격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그 공사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로마군에 대항하여 싸우던 그 긴 전쟁이 끝나기 전 마지막 날 밤이었습니다. 시카리의 지도자였던 엘르아잘이 모든 가장들을 회당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는 아주 유명한 연설을 하게 되지요. “형제들이여, 우리는 이미 오래 전에 진리되시고 정의로우신 인류의 주인이신 오직 한분 하나님의 종으로만 살아가겠노라고, 그리고 절대로 로마인들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고 결의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약속을 지킬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날이 밝으면 로마군은 총공격을 해 올 겁니다. 형제들이여, 우리의 아내가 능욕을 당하기 전에, 우리 자식들이 노예가 되기 전에 죽음으로 자유를 선택합시다. 우리는 로마인들을 대항하여서 들고 일어선 첫번째의 사람들이었고, 우리는 지금 그들과 대항하여 싸우는 마지막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예입니다. 우리에게 아직 힘이 있을 때에 용감하게 자유인으로 죽읍시다!”

자살을 선택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법에 자살은 엄격하게 금지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엘르아잘은 항아리를 깨뜨리고 깨뜨린 항아리의 파편에 가장들의 이름을 씁니다. 그리고 제비뽑기를 해서 순서대로 자기 가족들을 모두 죽인 후에 다시 회당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그러면 마사다에는 가장들만 남게 되겠지요. 마지막 가장들만 남았을 때에, 열명을 선택해서 다른 이들을 죽이고, 나머지는 서로 죽여주기로 했습니다. 마지막 한 사람만이 스스로 죽어야했으니, 사실 그 한 사람이 960명의 모든 짐을 다 짊어졌다고 해야할 것 같아요.

마사다 점령 - 로마군은 비탈길을 만들어 이동식 공성탑을 이용하여 마사다를 점령한다.

마사다 점령 - 로마군은 비탈길을 만들어 이동식 공성탑을 이용하여 마사다를 점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