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림교회광림교회광림교회

닫기
 

뉴스레터

21년 1월 31일 제 828호
지난 뉴스레터 보기
  • 뉴스레터 제920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919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918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917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916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915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914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913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912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911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910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909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908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907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906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905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904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903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902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901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900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99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98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97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96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95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94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93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92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91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90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89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88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87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86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85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84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83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82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81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80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79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78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77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76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75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74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73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72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71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70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69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68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67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66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65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64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63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62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61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60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59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58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57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56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55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54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53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52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51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50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49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48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47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46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45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44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43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42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41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40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39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38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37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36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35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34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33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32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31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30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29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28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27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26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25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24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23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22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21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20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19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18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17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16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15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14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13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12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11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10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09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08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07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06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05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04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03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02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01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800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799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798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797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796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795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794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793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792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791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790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789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788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787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786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785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784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783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782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781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780호
    전체보기
  • 뉴스레터 제779호
    전체보기
닫기

광림의강단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

2020년 4월 26일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누가복음 24장 32절)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 실망과 좌절 가운데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실의에 빠진 그들을 찾아오셔서 동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약 3년의 시간을 예수님과 함께 했던 제자들은 나름대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며 수많은 이적과 치유의 능력을 경험했고, 나아가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자신과 동행하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전에 주님은 “죽은 뒤 삼일 만에 부활하겠다”라고 말씀하셨지만 ‘그것이 어찌 가능하겠느냐?’라고 의심했거나, 혹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제자들, 그들은 갑작스럽고 허무한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기대와 꿈은 처절하게 무너졌고, 실망과 좌절, 불안, 그리고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본문의 두 제자도 많은 이들의 눈을 피해 예루살렘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고향으로 내려간다는 것은 ‘멀어져 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은 멀어져가는 그들과 함께 걸어가실 뿐 아니라, 떡을 떼시며, 성경을 풀어주셨습니다. 그 때, 제자들의 눈이 밝아져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차렸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마음의 뜨거움을 느꼈습니다. 그 뜨거움으로 인해 그들은 새로움을 경험했고, 이전의 상실과 무기력의 삶이 아니라, 새로운 소망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가 경험했던 그 뜨거움의 은혜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시온 챌린지 아이들 만나길 바라는 예수님 마음 담아

누가복음 24장 22~32절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 광림교회 담임목사 김 정 석
    kwanglim-sp@hanmail.net
첫째, 보는 것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의 얼굴에는 슬픈 빛이 가득합니다.(눅 24:17) 예수님의 죽음은 그들에게 실망과 낙심, 더 나아가 두려움을 느끼게 했습니다.(요 20:19) 두려움은 우리에게 영혼의 어둠을 불러옵니다. 이전에 함께 하셨던, 미래에 함께하실, 그리고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본문의 제자도 부활하신 주님이 함께 계심에도 눈이 어두워 보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주님에 대한 잘못된 관점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뜻을 알려고 하기보다 자신들의 욕심, 욕망, 기대를 채워주실 분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주님의 허무한 죽음 앞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세상의 관점으로 죽음은 완전한 끝이기 때문입니다.

보는 것은 가장 앞선 ‘경험’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눈을 ‘아인’(עין)이라고 하는데, 이는 ‘샘’이라는 뜻도 갖습니다. 샘은 생명의 원천입니다. 보는 것이 우리의 생각과 경험의 원천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어떠한 관점을 갖느냐,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방향은 완전히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제자들의 관점은 왜곡되어있었습니다. 순수하게 예수님만을 바라보지 못했고, 욕망의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의 관점이 잘못되었더라도 주님이 진실된 눈으로 바라보십니다. 그들과 함께 하시며 떡을 떼시고, 성경을 풀어주실 때 눈이 밝아졌습니다. 주님이 바르게 바라보시기에 그들의 관점도 달라졌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그들의 ‘영적인 바라봄’도 부활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뜨거움을 느끼게 되고, 평안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보는 것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주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 삶이 새로워지고 부활의 삶을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둘째, 십자가 중심의 신앙이어야 합니다.

두 제자는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32절)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성경을 풀어주시며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알려주실 때 이 고백이 터져나온 것입니다. 마음이 뜨거워졌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식어버린 그들의 믿음과 열정, 소망과 헌신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전까지 그들은 실망과 낙심 가운데 있었습니다. 냉소적이고 비판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에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해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십자가를 보며, 실패와 절망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부활의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 중심에 십자가의 사랑이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의 두려움을 피해 엠마오로 내려갔지만, 주님을 만난 후 십자가의 신앙을 갖고 발걸음을 돌려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부활의 증인된 사람으로서 ‘십자가와 부활’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때, 우리의 마음은 뜨거워집니다. 변화됩니다. 그리고 그 때 부활하신 주님을 참되게 만나고 알게 됩니다. 나아가 십자가의 고난을 넘어 부활의 능력을 소유할 수 있게 됩니다.  

셋째, 적극적으로 주님을 찾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모든 인간적인 소망과 기대, 욕심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여 엠마오를 거쳐 고향으로 내려가던 두 제자들, 그러나 본문 말씀에 의하면 그들은 이미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습니다(22~24절). 그런데 그들은 믿지 못했고, 너무나도 소극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했고, 심지어 부활하신다는 말씀을 수차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실망과 좌절의 자리에 눌러앉아버린 것입니다. 적어도 예수님을 찾아가보겠다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저 “우리가 놀랐다”(22절)는 말뿐, 고향으로 내려가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은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마 7:7~8),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신앙의 적극적인 태도를 말합니다.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태도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행동입니다. 적극적인 태도로 예수님을 찾는 것이 참된 믿음의 모습입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두 제자들을 친히 찾아가셔서 말씀하시고,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것야말로 ‘은혜’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소극적인 태도가 아닌 적극적인 태도로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예수님을 보고서도 알지 못하는 ‘어둠’ 가운데 있었던 제자들을 닮기보다는 먼저 주님께 나아가는 적극적인 신앙을 소유하시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