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림의강단
할 수 있는 대로 선한 일에 힘쓰는 성도
2021년 3월 28일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 로마서 15장 29절 )
바울은 소아시아 전역을 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던 중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큰 흉년으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소아시아 지역 교회의 성도들에게 예루살렘 교회의 상황과 함께 우리가 돕자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리고 구제 헌금을 모아 자신이 직접 예루살렘에 가겠다고 말합니다.
성도들의 사랑과 정성이 담긴 구제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가는 것은 바울에게는 위험이 도사리는 길입니다. 예루살렘에는 바울의 선교를 시기하여 그를 죽이겠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이 사실을 잘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을 통해 자신이 로마에 방문하고 싶으나 예루살렘에 가야만 하는 상황을 설명하면서 자신을 위해, 무엇보다 자신에게 해를 가하려는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게 해달라는 기도의 요청을 합니다. 로마서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사도행전 24장 이후의 말씀에 의하면, 바울은 예루살렘의 유대 지도자들의 모함에 의해 잡혀 공의회의 재판, 나아가 벨릭스와 베스도, 아그립바 왕 그리고 종국에는 로마에 가서 가이사의 재판을 받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잘 앎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굳은 의지를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하고”(31절)라며 기도 요청하기를 빼놓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섬기는 일이란 무엇입니까? 다만 성도들의 헌금을 모아 흉년으로 고생하는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것만을 뜻합니까? 그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섬김, 오늘 본문을 통해 그 의미를 함께 살펴보며 은혜 나누기를 원합니다.
로마서 15장 22~33절
22.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24.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 25.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28.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 29.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3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31. 나로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하고 32. 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33.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 광림교회 담임목사 김 정 석
kwanglim-sp@hanmail.net
첫째, 주는 자의 마음이 뜨거워야 합니다.
바울은 본문 26절에서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고 말합니다. 연보란 헌금을 의미합니다. 사실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의 교회들은 그렇게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인해 환란과 어려움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복음 안에서 하나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헌금을 모았습니다.
이는 단순히 동정하는 것도, 높은 자세를 취하여 애써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모체가 되는 예루살렘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복음과 은혜를 깨달았고 그 안에서 매일 새로워지고 감격할 수 있는 기회를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자발적으로, 희생적으로 뜨겁게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사랑과 섬김은 무엇입니까? 내가 희생하여 없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의무감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나를 향하여 거저 사랑을 베푸셨던 것처럼, 우리 역시 거저 다른 사람의 아픔과 고통, 어려움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내 안에서 뜨겁게 역사할 때 가능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는 것에 인색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행 20:35). 우리가 뜨거운 마음으로 베풀 때, 주님은 그 삶에 더 풍성한 복을 더해주십니다
둘째, 기쁜 마음으로 주어야 합니다.
본문은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기쁜 마음으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헌금을 하였다고 말합니다(26-27절). 기쁜 마음으로 했다는 것은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시험 들게 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보상의 심리’입니다. 내가 헌신한 만큼 보상 받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섬김은 보상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보상을 바라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 헌신하십니까? 우리는 그 부르심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이미 하나님은 값없는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시는 놀라운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 자체로 인해 기뻐하며, 이를 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정욕과 욕심에 이끌리어 ‘보상’을 바라면서 주님의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모이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아무런 보상이 없다고, 나의 마음과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따름입니다. 우리는 아무런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고,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기쁜 마음으로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이며, 더 큰 은혜와 복을 받는 길입니다.
셋째, 감사한 마음으로 주어야 합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의 예루살렘을 위한 헌금은 기쁜 마음과 더불어 감사한 마음에 의한 것입니다. 내게도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는 사실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비록 넉넉하지 못하고 적은 것일지라도,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함께 아파하고 공감하며, 도울 수 있는 기회에 참여하게 하신 은혜에 감사가 넘치는 것입니다.
혹여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서 드린 연보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9절에서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말했습니다. 비록 우리가 그 시기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을지라도 우리가 행한 선은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반드시 거둬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약속에 대한 믿음 안에서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베풀며 선을 행할 뿐입니다.
무엇보다 감사함이 있는 곳에는 분열이 없습니다. 감사로 섬기는 공동체가 건강하며,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갈 에너지와 역동성이 있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향한 긍휼과 자비의 마음도 넘쳐나게 됩니다. 오늘 우리 안에는 얼마나 감사가 흘러넘칩니까?
자신도 넉넉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뜨거움, 기쁨, 감사로 섬겼던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의 교회와 성도들을 기억합시다. 오늘 우리들의 삶도 때로는 그 여건과 상황이 어려울지라도, 주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뜨거운 마음, 기쁨과 감사로 우리의 이웃과 형제자매들을 돌아보며 섬깁시다. 이 섬김을 주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며, 우리 삶에 더 큰 풍요로움을 더해주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