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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림의강단

열매 맺는 삶

2021년 3월 14일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1장 22절)

예수님이 유대교 지도자들, 바리새인, 사두개인들로부터 계속해서 공격을 받으셨던 이유는 영적인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종교적인 제도나 관습에 가려진 참된 신앙을 들춰내시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구원이 무엇인지 선포하시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제도와 관습을 지키며 종교적인 삶을 살고자 했던 자들은 자신들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에 대해 매우 불쾌하고 불편했던 것입니다.

스티븐 아터번과 잭 펠튼의 『 더 예수처럼 덜 종교적인 』에는 ‘ 종교에 중독된 사람 ’ 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인격적인 변화는 없이 율법적이고 외식적인 삶을 살며 종교적인 제도와 관습만을 따르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영혼과 진정성이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을 막고 참된 구원에 방해가 된다고 여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스스로 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종교적인 생활에 머물러 있는지를 늘 점검해야 합니다. 본문의 말씀은 잎만 무성하고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는 모습을 기록하는데, 이는 우리가 생명력 있는 신앙을 회복하고 겉만 번지르르한 것이 아닌 내실 있는 삶, 곧 열매 맺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깨우쳐 줍니다. 본문을 통해 신앙을 점검하며 은혜와 도전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시온 챌린지 아이들 만나길 바라는 예수님 마음 담아

마태복음 21장 18~22절
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20.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 광림교회 담임목사 김 정 석
    kwanglim-sp@hanmail.net
첫째, 생명의 사명은 열매 맺는 것입니다.

본문의 무화과나무는 잎은 무성했지만 열매는 맺지 못합니다. 사명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시들도록 저주하십니다. 언뜻 이 말씀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굳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할 필요까지 있으셨을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무화과나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우리는 ‘무화과’ 라고 부르지만 이스라엘에서는 ‘파게’와 ‘테에나’로 나눠부릅니다. 파게는 유월절 즈음에 맺히는 첫 열매이고, 이후 긴 여름 동안 다섯번의 열매를 더 맺게 되는데 이를 테에나라고 부릅니다. 파게는 떫고 시고 맛이 없어서 상품의 가치가 떨어집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그네 혹은 가난한 자들의 음식이 되고, 누구든 지나가다가 따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첫 열매인 파게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앞으로도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잎만 무성할 뿐입니다.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보며 저주하신 것은 단순히 열매가 없고 배를 채워주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를 통해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유대인들의 영적 빈곤을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삶의 선한 열매를 맺어 가난한 이들에게 내어주고 보살펴야 하는데, 오히려 그들의 고혈을 빨아 자신의 배를 불리고, 종교제도와 관습으로 억압하며, 하나님께 예배할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좋은 열매를 맺고, 이를 대가 없이 나누는 것입니다. 누구든 나를 통해 배부름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열매없는 종교지도자들과 유대인들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며, 열매 맺는 사명에 최선과 진실을 다하며 살아야 합니다. 

둘째, 기도가 사라지면 영적 생명력도 사라집니다.

예수님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21-22절)고 말하시면서 기도에 대한 교훈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찾으셨던 것은 아마 다른 무화과나무들에 비해 풍성해보여서 좋은 열매를 더 맺었을 것이라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오가셨던 ‘벳바게’와 ‘베다니’는 모두 무화과가 많던 동네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무화과나무 중에서 유독 눈에 띄었던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는 막상 가까이서 보니 아무런 열매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우리 안에서도 발견됩니다. 즉 외식적인 신앙으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처럼 생명력이 없는 죽은 믿음의 상태인 것입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처럼 기도하지 않는 믿음에는 어떤 능력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회복되어야만 우리 영혼도 회복되는 법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우리의 생각과 말만 무성해집니다. 하지만 진정한 능력은 우리의 생각과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길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고 참된 능력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나의 무능력함을 인정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뽐내며 스스로 의롭다고 여겼던 바리새인을 떠올리게 됩니다. 바리새인에게 믿음은 사실 필요 없었습니다. 자신이 이미 충분히 구원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기도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보이는 곳에서 두 손을 들고 보란 듯이 기도했지만, 그것은 참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무성하고 열매는 없는, 실상 외식적인 행동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능력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의 능력이나 의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기도의 능력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내가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할 수 있습니까? 바로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것입니다. 기도는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것입니다. 자신의 무능력함을 인정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게 되며, 그곳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본 문은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22절)고 말씀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무능함과 연약함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구할 때, 믿고 구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은혜가 더해지게 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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