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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림의강단

너는 나를 따라 오너라

2020년 5월 31일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요한복음 21장 22절)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부르심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이 질문은 그리스도인은 어떤 목적을 갖고 살아가느냐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와 목적에 대해 “우리가 모든 선을 기뻐하고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그 영광으로 인해 우리도 영광을 얻게 되는 것”(살후 1:11~12)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늘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리스도 안에 속하여 살아가는 ‘그리스도 중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삶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과 더불어,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을 다시금 깨닫게 해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시자 제자들은 두려움과 무력감 속에 고향으로 돌아가 본래의 직업이었던 고기 잡는 일을 합니다. 밤이 새도록 그물을 내렸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오른쪽에 그물을 내리라 말씀하시고, 지친 그들을 위해 조반을 준비하시고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향해서는 세 번씩이나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시며 그의 죄책감과 상실감을 치유하시고, 이 후 새로운 사명을 주십니다. “너는 나를 따르라”(19, 22절).

이처럼 예수님은 삶의 목적을 잃은 제자들에게 ‘부르심과 사명’을 다시금 일깨워주십니다. “너는 나를 따르라”는 깨우침의 말씀 속에 어떤 의미가 있으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영적인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시온 챌린지 아이들 만나길 바라는 예수님 마음 담아

요한복음 21장 18~24절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 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24.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 광림교회 담임목사 김 정 석
    kwanglim-sp@hanmail.net
첫째,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는 신앙고백을 하였던 수제자입니다. 하지만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순수함 보다는 자신의 욕망과 명예가 앞섰기 때문입니다. 그는 비록 위대한 고백을 했지만, 십자가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보다는 자신의 기대와 생각과 의견이 앞섰습니다.(마 16:22). 또한 제자들과 더불어 서로 누가 큰지 다투고(막 9:33~34), 예수님께 야고보와 요한이 주의 우편과 좌편을 구하자 화를 내는(막 10:41) 베드로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관심이 예수님을 통해 얻게 될 자리, 명예였던 것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자신이 섬기러 오셨다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낮아지고 겸손할 것을 명하십니다(막 10:43~45)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자기 십자가를 지며, 자기를 낮추어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하나님 나라의 역설적인 진리를 자신의 욕심과 욕망으로 가득 찬 베드로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부활하신 주님은 베드로를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따르라’ 곧 자신의 욕망을 벗어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라 명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기의 욕망을 내려놓고, 오직 예수님이 목적이 되어 예수님을 온전히 바라보고 따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욕망, 욕심을 내려놓고 예수님만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여기에 하늘의 참된 복을 받는 비결이 담겨 있습니다.

둘째, 진리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나를 따르라”(19절)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베드로는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을 가리키며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21절)라고 묻습니다. 이에 주님은 “네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라고 질책하시며 다시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22절).

다른 사람이 예수님과 어떤 관계인지, 무엇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나와 주님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베드로는 다른 곳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진리이신 예수님만 붙잡으면 됩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다른 사람에게 너무 관심이 많았습니다. 여기에 베드로의 미숙함이 드러납니다. 아직 예수님이 절대적인 진리가 되심을 깨닫지 못했기에, 곧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 14:6)이라는 말씀이 와 닿지 않기 때문에 다른 것에 시선을 빼앗긴 것입니다. 남을 의식하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다보니 시기, 질투, 분노의 지배를 받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특별한 사명과 인생의 목표마저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적인 진리이신 예수님을 갈망할 뿐 아니라 붙들고 그 안에 살아야 합니다. 그 때 진리 안에서의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되고(요 8:32), 분명한 삶의 이유를 가지게 됩니다. 자기의 이기적인 욕망을 위해 그리고 늘 남과 비교하면서 살았던 불안정한 인생이 진리이신 예수님을 붙들 때 견고하여지고, 그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진리이신 예수님만을 붙들고 따라가시는 은혜가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셋째,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18절)고 말씀하십니다. 지금껏 이기적인 욕망, 욕심을 가지고 마음대로 살아왔다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지금부터는 네 뜻이 아니라 주님께 묶여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증인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베드로가 앞으로 주님을 위해 죽게 될 것을 암시하는 말씀이기도 한데, 전승에 의하면 네로 황제의 기독교 박해 때 베드로는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지도하던 중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하였던 베드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 참된 증인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증인’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약 200회나 사용되며, 헬라어로 ‘마르투스’(μάρτυς) 곧 ‘순교자’라는 뜻을 가집니다. 즉 증인이란 죽을 각오를 하고 증거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을 위해 희생을 각오하는 것이며, 예수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지극하여 자신의 생명까지도 드릴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나의 증인이 되어 부활하신 주님을 통해 경험하고 소유한 구원, 소망, 영생의 기쁨을 널리 전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증인된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복된 생명의 소식이 열방 가운데 전해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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