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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림의강단

십자가, 하나님의 능력

2020년 3월 8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린도전서 1장 18절)

우리는 능력을 숭배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능력에 대한 열망은 인간사의 특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람들은 능력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 능력은 오늘날 크게 세 가지 곧 돈과 명성, 영향력으로 여겨집니다. 물질적인 풍요가 중시되는 시대와 자신의 이름이 높아질 뿐 아니라 자신에 의해 타인이 움직여지기 원하는 욕망을 지닌 인간에게 돈과 명성, 영향력이 곧 능력인 것입니다.

이런 능력에 대한 열망은 바울 당시에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헬라인은 지혜를 구하고 유대인은 표적을 구한다”는 말씀(고전 1:22)과 같이 당시 사람들에게 지혜나 표적은 곧 능력을 상징했습니다. 본문 말씀에서 바울도 ‘능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능력의 ‘역설적인 면’에 대해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지혜나 표적과 관련된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에 관한 것이며, 이것은 특별히 ‘어리석고 약한 것’이라는 개념과 연결됩니다. 어리석고 약한 것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노예, 상습범, 반역자와 같은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정말 끔찍하고 잔인하게 형벌하는 데 사용했던 십자가는 당시 사람들에게 수치와 치욕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십자가가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과연 오늘날 우리에게 십자가의 의미는 무엇인지, 왜 십자가가 능력의 원천이 되는지, 본문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시온 챌린지 아이들 만나길 바라는 예수님 마음 담아

고린도전서 1장 26~31절
26.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 광림교회 담임목사 김 정 석
    kwanglim-sp@hanmail.net
첫째,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바울은 사람을 헬라인과 유대인이라는 큰 틀에서 두 부류로 나눠 설명합니다(고전 1:22~24). 그들은 각각 철학과 종교를 대표하고, 지혜와 표적을 추구하는데 공통점이 있다면 십자가를 수치스럽고 무능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고대 작가들은 당시 시민들이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어가는 사람을 보며 오락거리로 삼으며 수치심과 치욕을 고조시켰다고 기록합니다. 이처럼, 십자가는 수치와 치욕의 상징이자 가장 모욕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헬라인의 지적인 판단으로는 십자가 사건은 결코 하나님의 능력일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이 바라는 메시아,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힘없이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내려와 유대를 구원하는 능력을 보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힘없고 나약한 모습으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유대인에게 십자가는 실패와 헛된 기대의 상징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헬라인과 유대인이 능력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십자가가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십자가는 수치와 치욕의 상징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겸손과 희생, 더 나아가 하나님의 진실하신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죄를 고백하게 되고, 변화되며 하나님의 진정한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라고 말합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세상의 지혜나 표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 앞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때, 우리의 모든 죄를 고백하게 되고 삶이 변화됩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확고한 목적이며 능력인 것입니다.

둘째, 십자가에는 화목의 역사가 담겨져 있습니다.

로마서 5장 1절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십자가 사건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있던 담을 허물고 화목하게 하는 역사를 불러왔습니다. 구약시대, 사람은 피의 제사를 통해 용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단 한 번의 화목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는 화목하게 되었고 더 이상 제사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장 24절에 “부르심을 입은 자”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를 의미합니다. 헬라인이든 유대인이든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모두 십자가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먼저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화목하게 하고, 더 나아가 나와 이웃과의 관계를 화목하게 해줍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을 때,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회복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경험할 때,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처럼, 다른 사람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가 됩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우리의 겸손한 고백이 만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앞에 서게 될 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내려놓게 될 뿐만 아니라,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셋째, 십자가는 약함을 통해 능력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본문 26~27절 말씀에서 약한 것에서 능력의 역사가 일어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어리석고, 약하고, 천한 사람을 택하셔서 역사를 이루시는가? 그 대답이 29절에 나옵니다.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육체’란 세상의 것, 지혜와 표적을 구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진 세상의 기준, 지혜, 능력 등을 자랑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능력보다 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어리석고 약하고 천하다는 것은 순수한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적인 가치와 기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적으로는 미약해보일지라도 오직 하나님을 믿는 순수한 마음이 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약함에도 불구하고 쓰임 받는 것이 아니라, 약하기 때문에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이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는 겸손한 재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세상의 시각으로 보기에는 연약하고 미련한 것이지만, 영적인 시각으로는 그 어떤 것보다 강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를 통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순수함’이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일하십니다.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는 쓰임 받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십자가 앞으로 부르십니다. 겸손과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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