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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김선도 감독의 아흔 인생과 목회신학 이야기(5) 

2021년 5월 30일

최이우 목사(종교교회 담임)

정리: 이선아 기자 andy8950@naver.com

나의 스승, 나의 영원한 ‘목회임상학 교수’
크지 않은 신장에 딱 벌어진 어깨, 007가방에서 목회학 책을 꺼낸 후 학생들을 둘러보는 자신감과 신념에 찬 눈빛에 나는 완전히 압도되었다. 1976년 목회임상학 교수로 교단에 선 김선도 목사의 첫인상이다. 학생회 일로 정학 처분을 받고 학교를 떠나 외롭고 힘든 시간을 지낸 후 감신대 4학년에 복학한때다. 졸업을 하면 담임목회를 해야 한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던 내게 김선도 목사는 갈릴리 바다로 제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이었다. 한 학기 강의를 통해 어렴풋이 목회에 대한 감을 잡았고 남양주시 성산교회로 담임목회를 나갈 수 있었다.
1982년 5월 광림교회 김선도 목사를 가까이서 대면하는 영광을 가졌다. 전역을 앞둔 군목으로 대대교회 지원을 부탁드리기 위해 광림교회를 찾았다. 저녁 설교를 요청받아 군인 야전복 차림으로 강단에 선 후 사택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다음날 부목사로 함께 일하자는 놀라운 제안을 받게 되었고, 이 일이 오늘의 목회자로 설수 있게 해준 축복의 통로였다. 광림교회 부목사로 사역을 시작하며 솔로몬 왕을 가까이에서 보고 감탄사를 연발했던 스바 여왕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김선도 목사의 지도를 직접 받으며 사역한 5년 4개월 시간동안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깨달았고 감사했다.
1987년 안산광림교회 개척 담임목사로 파송 받으며 김선도 목사의 제자로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광림교회에서 배운 목회를 현장에서 펼치던 12년의 담임목회는 실로 은총의 시간이었다. 개척 예배를 드린 후 한국교회의 부흥의 추세를 타고 불같이 성장하여 왕십리 교회로 임지를 옮기기까지 주일예배 기준 등록교인이 5,000명에 육박했다. 이후 왕십리 교회에서 3년 3개월, 2003년부터는 종교교회 담임목사로 18년째 목회를 하고 있으며 이제 은퇴를 3년 앞두고 있다. 세상일이라면 43년 동안 같은 일을 해왔으면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겠지만 목회는 아직도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지금 당장 정리해 놓은 원고로 책으로 낸다 해도 70~80권은 족히 되겠지만, 설교를 준비하는 나는 여전히 초년생이다. 1976년부터 지금까지 김선도 목사는 내 목회의 스승이자 롤 모델이다. 내 스스로 목사의 제자라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감히 이글을 쓰면서 누가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린다.

목회자 김선도의 철학과 걸어온 길
목회는 하나님과의 만남과 그 부르심이 출발점이 된다. 김선도 목사의 목회자로서의 출발은 북한군에서 국군으로 5분 만에 변화시키는 기적을 체험한 그 순간이다. 그 기적을 이루어낸 원천은 기도이며 기도를 응답하신 하나님께 서원했던 그대로 하나님께서 쓰시는 도구로 자신을 드려 헌신한 것이다.
5분의 기적에서 시작된 삶은 공군 군목 생활에서 증폭되는 기적을 통해 불가능을 밀어내는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이어진다. 목사로서 두 가지 꿈이 있었다. 목회상담과 치유신학을 공부하는 것과 영어를 배우는 것이었다. 기도 중에 유학제안을 받았지만 미국에 갈 비행기 값을 마련할 수가 없었다. 매일 밤 공동묘지가 있는 뒷동산에 올라가 필사적으로 기도했고, 미 펜타곤에서 쓰는 비행기의 무료탑승이라는 놀라운 기도 응답을 받게 되었다. 김선도 목사는 지금도 안 되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공동묘지를 떠올린다. 절망이 소망이 되고 상처가 영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되새기며 하나님은 내가 생각 했던 것보다 더 크신 분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김선도 목사의 적극적 신앙은 철저한 신본주의다. 인간 스스로의 잠재력이 아닌 전적으로 위에 계신 성령으로부터 내려오는 은혜를 바탕으로 한다. 그 은혜를 사모하며 세 가지 사역에 집중한다. 첫 번째는 예전적인 예배이다. 광림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기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주일마다 질서 있게 잘 준비된 경건한 예전이 있는 예배였다. 지금도 그때의 예배를 내 목회에 적용하기 위해 노력한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며 신앙생활의 결정체로 광림교회 성장의 근간을 생동감 넘치는 예배에서 찾을 수 있다. 두 번째는 성경공부다. 매주 화요일 오전과 저녁에 열리는 트리니티 성경공부는 성도들의 믿음과 삶이 성경위에 확고히 세워지게 했다. 세 번째는 뜨거운 기도다. 교회는 성도들의 기도만큼 부흥의 불길이 타오른다. 김선도 목사의 삶의 알파와 오메가는 기도라고 보아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1988년부터 열리는 40일간의 ‘호렙산 기도회’는 모든 성도가 뜨거운 기도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역동적인 믿음의 산실이다.
광림교회 5대 전통(적극적인 신앙, 풍요한 창조, 성실한 생활, 사랑의 실천, 일치된 순종)은 지금의 광림이 있게 한 목회철학이다. 이 땅의 모든 교회는 나름의 목회철학이 있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목회 방향이 선포된다. 하지만 선포한 내용을 붙잡고 노력하여 발전시켜 그 열매를 거두는 교회를 찾기란 쉽지 않다. 김선도 목사의 목회에서 놓쳐서는 안 될 소중한 가치는 평범한 내용을 탁월함으로 만들어가는 창의성과 식지 않는 열성으로 이끌어가는 지속성이다. “네 시작은 마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욥 8:7)를 그대로 이루어 가는 목회이다.

교회 성장의 발판이 된 설교와 교육
1971년 젊음과 열정 가득한 41세의 김선도 목사는 광림교회 5대 목사로 부임하였다. 김선도 목사는 가장먼저 교회가 나아가야할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고 교회내외의 모든 환경을 새로운 형태로 바꿔 모든 성도가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영적으로 침체된 과거의 모습에서 벗어나 교회는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갈등의 위기도 있어 김선도 목사의 지도력에 도전을 받기도 했지만 설득력 있는 교육으로 담임자를 중심으로 일치단결하여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만들었다.
교회성장에는 김선도 목사의 실천을 부르는 설교와 교육이 있었다. 목사의 설교는 동사(動詞)다.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아~ 설교가 좋다’가 아니라 ‘이제 내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라는 생각을 갖게 하고 기도하며 실천에 옮기도록 했다. 또 트리니티 성서연구를 통해 말씀대로 살 수 있는 영적 힘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했다. 임원전지훈련으로 임원 각자가 광림교회라는 거룩한 공동체에 소속감을 갖게 하고, 임원 상호간의 교제를 통하여 교회가 한 목표를 향하여 힘차게 달려가는 기회가 되게 하였다.

시온 챌린지 아이들 만나길 바라는 예수님 마음 담아
삶으로 본을 보이시다

강남의 새 성전 건축은 ‘선교와 영혼구원’이라는 비전을 이루기위한 성취의 과정이었다. 김선도 목사는 1977년 땅 매입부터 1979년 봉헌예배를 드리기까지 수많은 난관을 성도들과 함께 철야기도와 금식기도를 이어가며 오직 기도로 헤쳐 나갔다. 그 과정에는 탁월한 동역자이며 수제자인 박관순 사모가 있었다. 가정과 교회를 섬기며 ‘족집게’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교인의 사정을 알고 자상하게 살피며 모든 교인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이셨다. 김선도 목사는 부교역자에게 사역을 위임하면서도 모든 재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했다. 단 매주 주간회의를 통한 철저한 관리로 교회 규모가 커지며 생기는 사역의 사각지대를 조심했다.
목자가 앞서가면 양들은 따라간다. 김선도 목사는 삶의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우치고 평생 행동으로 본을 보이셨다. 1976년 대학 강의실에서 처음 만난 날부터 오늘까지 그분의 태도는 달라진 것이 없다. 부목사로 가까이서 뵈며 ‘옷매무새와 몸가짐은 항상 단정하게, 항상 성경을 소지하고 찬송가는 마지막 절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원고준비는 성실하게’ 등 작은 부분까지도 따라해 보고자 노력했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이 있다. 김선도 목사는 나의 영원한 ‘목회 임상학’ 교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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