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만나다
한국 최초의 감리교회 벧엘교회(Bethel Church)
2021년 12월 26일
<아펜젤러 선교사 - 3>
권순정 목사(목회선교지원실)
1887년 정동 언덕에 르네상스식으로 지은 배재학당 본관은 한국 최초의 근대식 건물로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곳은 서구의 과학과 학문을 접할 수 있는 곳이었으며, 자연스럽게 기독교적 가치관을 전하는 선교 학교로서의 역할도 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직접적으로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는 곳이 필요했습니다. 1887년 4월 4일 열린 선교사월례회에서 서울 중심부에 성경공부를 위한 장소를 구입하기로 결의하고, 9월에 작은 집을 구입한 뒤, 10월 9일 이곳에서 처음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때 4명의 조선 사람이 예배에 참석했는데, 이 모임이 지금 정동교회의 시작입니다. 아펜젤러는 처음 교회를 세우며 야곱의 비전을 생각했고, 교회 이름을 벧엘교회라 명명했습니다. 아펜젤러는한국어를 쓰기위해 노력했으며, 첫 세례식 때도 한국어로 집례했으며, 첫 성탄절 예배 때도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라는 제목으로 한국어 설교를 했습니다. 뉴욕의 유니온신학교에 보관중인 아펜젤러의 수첩을 보면 그가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한국어 단어를 수첩에 적고 매일 체크하며 외웠으며, 모르는 단어가 있을 때마다 수첩에 적고, 그 뜻을 한국 사람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는 가급적 한국어를 쓰기 위해 항상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아펜젤러의 노력으로 배움의 혜택 밖에 있었던 많은 여성들이 교회에 와서 외국인이 하는 서툰 한국어를 통해서도 많은 은혜를 받았으며, 이후 벧엘교회를 중심으로 전도의 열기가 확산되어 수많은 젊은 학생들이 회심하였고, 서양학문과 복음의 중심지가 된 정동에서 교파를 초월한 연합예배와 기도회 등이 연합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현재 정동교회, 즉 벧엘교회의 성전건축은 1895년 8월 7일에 시작되었으며, 한 달 후인 9월 9일에 거행된 정초식에는 조정의 법무대신 서광범과 외무협판 윤치호 등이 참석할 정도로 조선 사회에서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조선 역사상 남녀가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고, 함께 고개 숙여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수천 년 이어 내려온 조선 사회의 봉건성이 무너지는 자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