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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림의 강단

생명의 떡을 먹어라

2022년 2월 27일

“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 ( 요한복음 6장 40절)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을 통해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육적인 필요뿐만 아니라 영적인 필요도 채워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께 믿음으로 나아갈 때, 육적인 것을 넘어 영적으로도 풍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본문 35절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떡’이라고 표현된 이 단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매일 먹던 빵을 말합니다. 즉 매일 먹어야 하는 것,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직업을 흔히 ‘밥벌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곧 이 땅에서 하는 일이 생명을 유지하고 양식을 구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생존에 필요한 양식을 구하는 것은 일과 삶의 목적이 될 만큼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음식을 얻는 것에 집착합니다. 배를 채우기 위해 살아가고, 배가 채워져야 만족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육신의 배가 아닌 영적인 배를 채우며 영생의 기쁨 가운데 거하는 인생으로 불러주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름 아닌 영원한 생명의 떡을 주시는 예수님, 우리의 영적인 필요를 채우시며 그 풍성함으로 만족을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영생을 얻고 참 생명 가운데 거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 기도의 제목을 나누고자 합니다.

시온 챌린지 아이들 만나길 바라는 예수님 마음 담아

요한복음 6장 22~40절
22.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던 무리가 배 한 척 외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23.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께서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 24. 무리가 거기에 예수도 안 계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25.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2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30.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31.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4.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 광림교회 담임목사 김 정 석
    kwanglim-sp@hanmail.net
첫째, 육신의 떡이 아니라 예수를 따릅니다.

요한복음 6장 1절부터 말씀을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으로 가시기 전,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에서 병자들을 고치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경에는 큰 무리가 이 표적을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표적을 본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가시는 곳을 따라다니며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웠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고자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제자 중 빌립은 떡을 사기 위해 얼마가 필요할지 계산부터 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한 아이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예수님께로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그 작은 도시락으로 오천 명이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 큰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성경에는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원대로 먹고 배부른 후에도 음식이 남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요한복음 6장 14절에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자리를 떠나 혼자 산으로 가십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삼으려 하는 마음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을 따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이 아닌 육신의 것, 즉 떡에 집착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26절)라고 말씀하십니다. 표적을 보았다면 그 표적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표적의 목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깨닫게 하는 것 입니다. 우리도 많은 표적을 보고도 예수님이 아닌 그 표적 자체를 따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27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표적이 아닌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소유가 아니라 존재를 지향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소유를 지향하며 살아갑니다. 대표적으로 돈, 명예, 권력과 사람 그리고 건강 등을 소유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소유하지 못할 때 상실감에 빠지게 됩니다. 이는 소유하고자 하는 대상이 삶의 주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세상적인 소유를 통해 행복을 얻고자 하는 삶에는 늘 상실감에 대한 불안이 따라옵니다. 그렇기에 세상적인 소유를 지향하는 사람은 진정한 행복과 감사가 없습니다.
떡을 보고 예수님을 따랐던 많은 사람들은 소유지향의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 즉 떡으로 인한 배부른 삶을 소유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그들의 존재를 바꿔줄 양식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떡을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떡은 생명의 떡으로 바로 예수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본문 35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이 생명의 떡임을 선포하십니다. 이렇게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더 이상 세상의 소유를 지향하지 않고 존재를 지향했습니다.
우리도 세상의 것을 소유하는 것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가 변화되며 참 생명 가운데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존재를 변화시키시고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생명의 떡으로 영생을 맛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40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안에 거할 때 우리는 이미 구원의 삶, 영생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웨스트콧이라는 신학자는 “우리가 부활한 후에 영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누리는 영생이 부활을 필수불가결한 사실로 입증해 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오늘 우리가 영생의 삶을 살 때, 부활은 자동적으로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이 땅에서 영생의 삶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순간 말씀 안에 거하며 생명의 떡을 먹어야 합니다. 이는 삶 속에서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예수님을 내 삶 속에, 내 안에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음식을 먹을 때 그 음식의 영양소나 칼로리 등을 다 알지 못하고 먹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먹은 음식은 몸 안에서 분해되어 에너지가 되고 생명을 유지하게 해줍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고 내 안에 모시고 사는 것 곧 생명의 떡을 먹을 때, 우리 안에 예수님의 참된 생명이 있게 됩니다. 늘 말씀 안에 거하며 나의 삶과 내 안에 주를 모시어 부활과 영생의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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