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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림의 강단

“열매 맺기를 힘쓰라”

2022년 7월 10일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1장 22절)

예수님께서는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유대교 지도자들과 바리새인, 사두개인들로부터 공격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적인분으로서 제도와 관습으로 가려진 신앙 가운데서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려주시고 참된 구원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이 되었지만, 제도와 관습을 지키며 종교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외식적인 사람들에게는 매우 불편한 진실이 되었습니다. 스티븐 아터번의 ‘더 예수처럼, 덜 종교적인’이라는 책에 ‘종교에 중독된 사람’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인격적인 변화 없이 율법적이고 외식적인 삶을 살며 종교적인 제도와 관습만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영혼 없고 진정성 없는 종교가 오히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을 가로막고 오히려 참된 구원의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우리는 늘 내가 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인지 종교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잎만 무성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우리가 생명력 있는 신앙을 회복해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갈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이 열매를 맺는 삶으로 회복하고,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시온 챌린지 아이들 만나길 바라는 예수님 마음 담아

마태복음 21장 18~22절
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20.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 광림교회 담임목사 김 정 석
    kwanglim-sp@hanmail.net
첫째, 생명의 사명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무화과나무는 잎은 무성했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며 자신의 사명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를 시들도록 저주하신 것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참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굳이 죄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무화과나무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무화과’라고 부르지만 이스라엘에서는 ‘파게’와 ‘테에나’로 나누어 부릅니다. ‘파게’로 불리는 무화과는 유월절 즈음에 맺히는 첫 열매이고, 이후에 긴 여름 동안 다섯 번의 열매를 더 맺게 되는데 이 무화과를 ‘테에나’라고 합니다. ‘파게’는 떫고 시며 맛이 없기 때문에 상품의 가치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파게’는 자연스레 나그네나 가난한 자들의 음식이 되었고, 누구든 지나가다가 따먹을 수 있는 열매였습니다.
첫 열매인 파게 무화과를 맺지 못한 나무는 앞으로도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잎만 무성할 뿐 일 년 내내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 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보며 저주하신 것은 단순히 열매가 없고, 예수님의 일행의 배를 채워주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이 무화과나무를 통해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유대인들의 영적 상황을 말씀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잎만 무성할 뿐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열매를 맺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 열매를 내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가난한 자들의 고혈을 빨아 자신들의 배를 불리고, 종교적인 제도와 관습으로 사람들을 억압하며, 자유롭게 기도하며 하나님께 예배할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좋은 열매를 맺어 다른 사람에게 대가 없이 나눠주는 것입니다. 누구든 만날 때마다 배부름과 만족감을 느끼고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오늘도 습관적인 종교생활로 바리새인과 같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며,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열매 맺는 사명을 다하는 진실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둘째, 기도가 사라지면 영적 생명력도 사라집니다.

예수님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시며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21~22절)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에게 기도에 대한 교훈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찾으신 이유는 아마도 그 무화과나무가 다른 무화과나무들에 비해 풍성해보여서 좋은 열매를 맺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오가셨던 ‘벳바게’와 ‘베다니’라는 동네는 모두 무화과가 많던 동네였습니다. 많은 무화과 중에 유독 눈에 띄었던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 하지만 막상 가까이 가서 보니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한 모습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외식적인 신앙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이 생명력이 없는 죽은 믿음입니다.기도하지 않는 믿음에는 어떤 능력도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도 알 수 없으니 내 마음대로 행하고 교만해 집니다. 기도가 회복되어야 우리의 영혼이 회복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생각이나 말만 무성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능력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에 있습니다. 기도가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길임을 깨닫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가까이 살기를 다짐합시다.

셋째, 나의 무능력함을 인정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열매가 없고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뽐내고 스스로 의롭다 생각했던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이미 자신들이 구원 받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진심으로 기도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보이는 곳에서 두 손을 들고 보란 듯이 기도했습니다. 이러한 기도는 진정한 기도라 할 수 없습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와 같이 외식적인 행동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기도에는 어떤 능력도 없습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능력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E. M 바운즈 목사님은 “오늘날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더 많은 기계나 더 좋은 기계도 아니요, 새로운 조직도 아니요, 기발한 방법도 아니다.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성령이 쓰실 수 있는 사람 즉 기도의 사람, 기도에 능한 사람이다. 성령은 방법을 통해서 흘러나오지 않고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신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이 기도합니다. 기도는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는 것이며, 기도 자체가 목적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나의 무능력함을 기도를 통해 고백할 때, 그곳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본문 22절에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무능력을 고백하며 주님의 능력을 구할 때, 믿고 구하는 것이 주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은혜를 누리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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