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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림의 강단

참된 안식의 진정한 의미

2022년 8월 28일

“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 마가복음 3장 5절)

본문 말씀을 보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킨다고 하는 바리새인들의 모습에서 참된 회개의 모습과 하나님께 집중하는 모습, 서로 나누고 교제하는 축제의 모습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볼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목적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바리새인들에게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4절)고 물으시며, 참된 안식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참된 안식을 경험한 사람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형식적인 안식을 누렸기 때문에 자신들만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삶의 태도는 다른 사람을 죽일 뿐만 아니라 자신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본문을 통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해주고, 세상의 욕망으로부터 우리의 영혼을 지켜주는 참된 안식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시온 챌린지 아이들 만나길 바라는 예수님 마음 담아

마가복음 3장 1~6절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 광림교회 담임목사 김 정 석
    kwanglim-sp@hanmail.net
첫째, 참된 안식을 얻을 때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인간은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을 삶의 최종 목표로 두고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정말 행복한 삶일까요? 역사를 살펴보면 인간은 행복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전쟁을 하기도 하며 다른 사람을 짓밟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빼앗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행복을 위해 죽음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선택된 민족 이스라엘이라고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삶의 목표는 안식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안식이야말로 참된 행복이었습니다. 오랜 방랑의 역사, 광야의 인생을 살았던 그들에게 약속의 땅은 안식의 땅이었고, 또 그곳에 묻힐 때 영원한 안식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안식일을 허락하셔서 7일에 한 번 쉼을 허락하셨습니다. 한 번의 쉼을 통해 진정한 안식이 무엇인지 맛보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하나님을 위한 날도 사람을 위한 날도 아닌 오직 자신들의 생각과 권위, 기득권만을 지키기 위한 날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지키기 어려운 규정들을 만들어 놓고 그대로 하지 않으면 죄인이라고 낙인을 찍었습니다. 그들의 몸은 쉬고 있었을지라도 나쁜 생각을 하는 마음은 분주하게 음직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찾기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대해 율법에 메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한 날이 아니라 오히려 선을 행하며 다른 사람들을 돕고, 치유하고, 사랑하는 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자신만 의롭게 보이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율법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날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주십니다.
사람이 진정한 행복과 평안함, 더 나아가 안식을 느끼는 때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섬기며 봉사할 때입니다. 섬김과 헌신의 삶 속에서 참된 안식을 발견하게 될 줄 믿습니다. 

둘째, 참된 안식을 얻을 때 치유와 회복의 역사를 경험합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마가는 회당의 여러 사람들 중 특별히 한쪽 손 마른 사람을 지목하여 기록했을까요? 그 사람은 우연히 그 곳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또한 예수님의 말씀을 듣거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도 그 곳에 있었던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거나 후천적으로 질병을 얻게 된 경우, 부모의 죄나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장애인들이나 병자들이 회당에 오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들판이나 강가에서 또는 마을에서 병자들을 고치셨던 이유도 이들이 회당에 자유롭게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손 마른 사람, 즉 손에 장애가 있던 사람이 회당에 앉아 있었습니다. 학자들은 당시 시대 상황을 비춰볼 때 아마도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손 마른 사람을 의도적으로 회당에 앉혀놓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해, 뭔가 흠을 잡기 위해 덫을 놓고 기다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에 이삭 자르는 것을 허용하셨던 예수님께서는 손 마른 사람을 보시고 어떻게 하셨을까요?
바리새인들의 예상대로 예수님은 병자를 일으켜 세우시고 고치셨습니다. 예수님께 중요한 것은 상황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회당에 나오 앉아 있는 한 영혼’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 손 마른 사람을 이용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 손을 치유하셨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주님께 나오는 자는 참된 안식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치유와 회복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때때로 우리는 손이 마른 병자처럼 마음이 마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도 주님께 내어놓으면 평안을 얻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의 질병, 육체의 불편함을 치유하실 뿐만 아니라 마음의 문제까지도 치유하고 회복시키시는 주님의 참된 안식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참된 안식을 얻을 때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죄인이라 말하던 병자를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완악하고 무자비한 마음을 보시고 탄식하셨습니다. 그리고 손 마른 사람을 통해 안식의 새로운 개념을 주십니다. 손 마른 자는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한 도구로 회당에 오게 되었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사람들을 깨우치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바리새인들의 말에 움직이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를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존재가 된 것입니다.
안식일이기에 아무도 일하지 않던 날은 고침 받은 병자가 태어나서 가장 많이 움직인 날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치유를 경험한 후 안식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가장 귀한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움직임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아름다운 안식이 되었던 것입니다. 마른 손이 회복된 사람은 무엇을 꿈꿨을까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이 생각나며 새로운 비전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삶의 결말을 알 수는 없지만, 그 사건은 오늘날까지 우리들에게 귀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우리를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킵니다.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삶으로 변하게 됩니다. 삶의 매 순간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치유 받고 새로워지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참된 안식을 통해 존재 자체로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귀하고 복된 삶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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