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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림의 강단

내어놓음, 용서의 시작

2022년 11월 13일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요 8:7)

이른 아침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한 여인을 예수님 앞으로 끌고 옵니다. 이 여인은 간음 하다 현장에서 발각된 여인입니다. 유대인의 율법에 간음한 자는 현장에서 돌로 쳐 죽이도록 되어 있었는데 그들은 간음한 여인을 죽이지 않고 예수님 앞으로 끌고 온 것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왜 간음한 여인을 죽이지 않고 예수님께로 끌고 왔을까요?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어떤 판결을 내리실지 시험하여 곤경에 빠뜨리기 위한 목적으로 예수님 앞에 끌고 온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완악한 마음 곧 겉으로는 거룩한 것 같아도 속으로는 곪아있는 죄악된 모습,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그들의 모습을 잘 아셨습니다.
예수님께는 간음한 여인이나, 그 여인을 고발한 사람들이나 모두 용서 받아야 할 불쌍한 영혼으로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늘 깊은 내면의 상처를 보시고 보듬어 주십니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가 군중에 둘러싸여 수치심을 느끼는 간음한 여인과 같은 상태, 또 분노에 휩싸여 자신의 부족함은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향해 돌을 던지고자 하는 우매한 군중과 같을지라도, 주님은 우리의 상처를 보시고 용서받아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상처 받은 영혼을 위로하시며 용서하시는 주님 앞에 모든 상처를 내보이며 치유 받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시온 챌린지 아이들 만나길 바라는 예수님 마음 담아

요한복음 8장 1~11절
1.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 광림교회 담임목사 김 정 석
    kwanglim-sp@hanmail.net
첫째, 죄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습니다.

죄의 대가가 얼마나 참혹한지 알면서도 죄에 중독이 되면 나만은 그 참혹한 심판을 피해갈 수 있다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죄의 대가는 분명히 있습니다. 지금 당장이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그 대가를 치르고 맙니다. 그런 의미에서 죄를 짓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며 그 선택의 책임은 바로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할지라도, 또는 죄인줄 모르고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그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본문의 간음한 여인은 매우 은밀한 죄를 지었습니다. 아마 그녀는 죄를 지을 때 비참한 결말을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일이 절대 없을 것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은밀한 죄는 우리의 인생을 곪게 만듭니다. 설사 죄가 드러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조금씩 우리의 영혼을 파멸로 이끌어 갑니다.
죄는 언제나 상처를 동반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자신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줍니다.
우리의 모습도 이 여인과 같지 않은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나만의 은밀한 죄를 즐기며 아무런 의식 없이 그 죄에 침식되어 가지는 않습니까? 사람들 앞에서는 죄를 숨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은밀한 죄까지도 아시는 하나님께 모든 죄를 고백하고 새롭게 되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은밀한 죄 혹은 은밀하게 죄를 짓는다고 할지라도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본문의 여인은 은밀하게 죄를 짓는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깊이 숨기고 있던 죄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입니다. 이 여인에게 연민이나 구원을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녀를 죽이고자 하는 많은 군중들이 에워싸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 여인은 이제 아무런 희망도 없이 그저 성난 군중들의 고함소리와 함께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를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의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며 모든 것을 포기할 만한 순간에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 음성은 이 여인을 정죄하는 소리가 아니라 성난 군중들을 향한 외침이었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7절) 이 말씀은 간음한 여인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 더 나아가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말씀입니다.
군중들의 매서운 눈초리와 성난 콧바람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예수님과 여인만 남았습니다. 간음한 여인은 예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헝클어진 머리, 찢겨진 옷자락, 눈물로 얼룩진 얼굴이지만 뭔가 알 수 없는 평안과 위로를 맛본 여인, 이제 그녀는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마음 둘 곳이 없어 방황하던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11절)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허물을 덮으시며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남들에게 말 못하는 죄가 있습니까? 또는 그 죄로 인해 상처를 받았습니까?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용서하시고 치유하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실 뿐만 아니라 거룩하게 살아갈 용기까지 주시는 줄 믿습니다.

셋째, 죄를 주님 앞에 내어놓으십시오.

바리새인과 서기관, 그리고 손에 돌을 쥐고 간음한 여인을 향해 죄를 묻던 군중을 생각해봅시다. 혹시 내 모습이 그들과 같지는 않습니까? 스스로 ‘거룩하다’하며 다른 사람을 정죄하지는 않습니까? 하지만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라는 말씀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은밀한 죄를 갖고 있습니다. 간음한 여인처럼 그 죄가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기를 원할 뿐입니다. 나의 죄를 숨기기 위해 다른 사람의 죄를 더 부각시키고 정죄할 때도 있습니다. 돌을 쥐고 간음한 여인을 둘러싸던 군중도 자신들의 죄를 숨기고 가리기 위해 다른 사람의 죄를 들춰냈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그 앞에 나아가면 우리의 죄와 상처가 모두 다 드러납니다. 우리의 죄가 부끄럽고 수치스럽기 때문에 그 빛 앞에 나아가길 주저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빛 앞에 나아가면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치유해 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죄와 상처를 숨기고 어둠으로 향하는 사람은 치유받을 수 없습니다.
간음한 여인은 궁지에 몰렸지만, 그 자리에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예수님의 사랑의 눈빛이 모든 것을 압도하셨습니다.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는 군중의 함성이 너무나도 컸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모두를 잠재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났고 용서를 받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은 죄 지은 여인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보다 더 복된 사람이자 깨끗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 용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났다면 예수님의 용서함을 받았다면 더 이상 죄의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상처로 인해 아파할 필요도 없습니다.
온전히 내어놓음에 온전한 치유가 있습니다. 죄인의 모습 그대로 주님께 자신의 삶을 고백합시다. 깨끗하게 용서받고 치유되는 역사가 바로 우리의 삶에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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