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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림의강단

슬픔과 하나님의 위로

2023년 6월 11일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사람은 누구나 슬픔을 싫어합니다. 슬픔을 피해서 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불교인들은 이 슬픔과 고통과 번뇌의 세상을 피하여 산중에 깊숙이 들어가 수도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슬픔을 도피해서 사는 종교가 아닙니다. 오히려 슬픔의 한 가운데서 슬픔을 체험하며 그 속에서 위로를 받고 축복을 전하는 것이 기독교가 전하는 진리입니다.
이 세상에는 슬픔의 상처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슬픔의 눈물을 통해서 인생의 새로운 의미와 깊이를 알 수 있고, ‘이것이 인생이로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John Bunyan)이 젊었을 때 일입니다. 그가 군대에서 보초를 서는데,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친구에게 부탁하여 대신 서 있게 하고 마을에 나가 일을 보고 돌아오니 그 친구가 그만 적의 저격을 받아 시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에 번연은 자기 대신 죽은 친구의 죽음 앞에 비통하게 울면서 떠올랐던 작품을 썼는데, 그것이 성서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천로역정’입니다.
기독교인은 슬픔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안고 그리스도 앞에 나올 때, 그 슬픔 속에서 위대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슬픔을 당할 때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부모, 형제를 원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원망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는 그 슬픔을 통하여 새로운 축복을 약속해 주십니다. 

시온 챌린지 아이들 만나길 바라는 예수님 마음 담아

마태복음 5장 1~12절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 광림교회 담임목사 김 정 석
    kwanglim-sp@hanmail.net
첫째, 슬픔을 받아들이는 자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따릅니다

슬픔은 인간의 실존적인 상황입니다. 인간은 슬픔을 피해서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슬픔을 도피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과감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건실한 인격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하 12장 11~23절을 보면, 다윗 임금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윗이 부도덕한 잘못으로 말미암아 우리아의 아내로부터 자식을 낳았는데, 그 아이가 갑자기 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식음을 전폐하고 얼굴을 땅에 비비며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칠일 만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때에 다윗은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성전에 들어가 기도한 후, 궁전으로 돌아와 음식을 먹었습니다. 다윗은 숙연히 그 슬픔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위대한 인격입니다.
우리가 캄캄한 방에서 고민하며 끙끙 앓고, 고통을 당한다고 우리의 슬픔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슬픔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크신 위로가 따르게 됩니다. 잃은 것이 있으면 나중에 분명히 얻는 것도 있습니다. 당장 잃은 것만 생각하지 말고 아직 남아 있는 것을 보기를 바랍니다.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자원들을 발견하여 위로를 얻기를 바랍니다.

둘째, 슬픔 속에서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따릅니다

“애통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마 5:4)라는 말씀은 영적인 애통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19~24)하며 괴로워했습니다. 이와 같이 자기의 범죄한 속성 때문에 슬퍼하고 애통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위로의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지만(마 26:69~75), 마지막에 그는 자기의 죄를 깨닫고 크게 뉘우침으로써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이사야로부터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말을 들은 히스기야 왕은 성전에 가서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심히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사 38:1~8). 그의 눈물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 왕의 생명을 15년이나 연장해 주시고 므낫세라는 아들까지 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죄를 바라보며 애통해하며 통회하는 사람이 진실한 기독교인입니다.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애통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위로의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셋째, 슬픔을 당한 자와 함께 슬퍼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따릅니다

기독교인들은 슬픔을 당한 자와 함께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웃으셨다는 말씀은 없지만 우셨다는 말씀은 세 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 가운데 가장 짧은 단어로 기록된 구절은 예수님이 친구인 나사로의 무덤에 찾아가 우셨다는 기록입니다(요 11:35).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고통을 알고 같이 울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 가운데 한 명입니다. 그것도 특정한 분야에서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고루 재능을 발휘했다는 점에서 타고난 천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그림 ‘모나리자’는 밀레의 ‘만종’과 함께 세계 미술사를 빛낸 걸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또한 그가 스케치한 비행기 모형도는 인류가 하늘을 나는데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했습니다. 여기에 더불어 그는 인체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연구에 몰두한 의학자, 과감한 실험정신으로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낸 발명가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가 스케치했던 자전거 모형도는 현대인들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와 거의 비슷할 정도로 페달과 체인의 모양까지 갖추고 있고 치밀하게 계산된 잠수함 설계도는 수많은 해양학자에게 큰 영향을 끼쳐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다빈치도 어렸을 때는 고아라는 이유로 주위 사람들의 따돌림을 받는 소극적인 아이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집 밖에 나가는 것조차 싫어했고 조그마한 일에도 쉽게 울고 포기해버리는 아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를 키웠던 할머니는 슬픈 표정으로 다빈치가 집을 나설 때마다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여주었다고 합니다.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 할머니는 너를 믿는다.” 세월이 흐르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마음속에 부모가 없다는 자괴감과 주위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슬퍼하는 날이 있었지만, 할머니의 위로로 그는 힘을 얻었습니다. 할머니는 숨을 거두던 날까지 그 말을 단 하루도 거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고 격려를 받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우리도 슬픔 가운데 있는 누군가를 진정으로 인정해주고, 격려해 줌으로써 슬픔 속에 있는 사람을 살릴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아픔을 같이 나누는 우리가 될 때에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의 은총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그 손길이 우리에게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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