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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림의 강단

용서하는 삶

2023년 8월 13일

이슬람 국가인 튀르키예에서 비밀리에 선교를 하던 남매가 있습니다. 남매는 갑자기 들이닥친 이슬람교도들을 보고 도망쳤습니다. 다행히 여동생은 몸을 피할 수 있었지만, 오빠는 총에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그 후 여동생은 신분을 숨긴 채 간호사가 되어 의료선교를 했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근무하는 병동에 한 사람이 실려 왔습니다. 그녀는 그 사람이 오빠를 총으로 쏴 죽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분노의 감정을 느꼈고 곧 그 사람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습니다. 여동생은 이 문제에 대해 기도하다가 복수가 하나님의 응답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대신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그 사람을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그가 회복될 무렵, 여동생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혔습니다. 놀란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왜 나를 죽게 내버려두지 않았습니까?” 그녀는 “제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도 용서하셨습니다. 그분의 능력으로 저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여동생은 오빠의 죽음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었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오빠를 죽인 사람을 용서했습니다. 분노의 해결책이 복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분노의 감정이 솟아오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시온 챌린지 아이들 만나길 바라는 예수님 마음 담아

누가복음 23장 33-38절
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35.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36.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37.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38.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 광림교회 담임목사 김 정 석
    kwanglim-sp@hanmail.net
첫째, 용서하라

기독교 윤리학 교수 루이스 스머즈(Lewis B. Smedes)는 「용서의 기술, Forgive and Forget」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의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서로에게 공정하지 못하고 깊은 상처를 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용서를 만드신 것이다. 우리를 용서하신 하나님은 우리도 서로 용서하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무엇보다도 용서가 분노를 극복할 진정한 방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와서 물었습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마 18:21) 당시 유대법에는 세 번까지 용서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일곱 번까지 용서하오리까”라고 물었던 베드로는 자신이 자비롭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 18:22)고 말씀하셨습니다.
용서는 우리의 생활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 구속되고, 그들의 행동이 우리의 반응을 결정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용서하지 않을 때 상대방의 행동에 신경을 쓰게 되고, 계속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용서에 대한 최고의 예를 보여주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예수님처럼 내게 아픔을 준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하며 분노의 감정을 해결해야 합니다.

둘째, 회복의 때를 기다리라

한 사람의 조롱 때문에 매우 화가 난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기다림에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언젠가 복수하겠다는 분노의 씨앗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분노의 마음을 삭이며 회복의 씨앗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는 상처받은 마음이 치유되기를 기다리며 평안해지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이 두 사람 중 어떤 사람이 현명한 사람일까요?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포도주를 주며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눅 23:34-37)
예수님께서는 충분히 분노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분노하지 않으셨습니다. 군중들의 조롱과 제사장들의 모함 그리고 제자들의 배신을 경험하고도 분노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회복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설령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시고 부활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며 구원받을 것을 믿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에서 가장 큰 질병은 ‘분노’라고 합니다. 어떤 감정도 쉽게 분노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분노의 감정이 찾아올 때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회복의 때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기다림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한 감정을 치유해 주실 뿐만 아니라, 분노의 원인까지도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셋째, 선한 것을 바라보라

분노의 감정이 싹트기 전, 상황과 사람으로부터 선한 것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능력은 화가 분노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상황과 사람으로부터 선한 것을 바라보셨습니다.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상황을 통해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바라보셨으며, 자신을 못박는 사람들 안에 있는 선한 양심으로 인해 그들이 회개할 것을 바라보셨습니다.
아무리 나를 괴롭히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양심이 있습니다. 잠시 누군가와 다투어 분노할 일이 생길지라도 그 사람 자체는 악인이 아닙니다. 단지 서로의 의견이 맞지 않아 대립한 것 뿐입니다. 이것을 깨달을 때 상대방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바뀔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분노할 상황을 만나도 그 안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있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은 나를 연단하신다는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요셉은 부정적인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바라보았습니다. 좁은 감옥 속에서 좌절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소망을 가졌고, 보디발 아내의 모함 속에서도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습니다.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바라볼 때, 상대방에 대한 나의 감정이 바뀝니다. 아무리 주변 상황이 나를 분노케 할지라도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발견하며 하나님의 평안 가운데 거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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