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림의강단
다시 일으키시는 은혜
2023년 9월 10일
“…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요 21:17)
디베랴 바닷가에 어둠이 깔리고 3년 동안 따라다니던 스승을 잃은 일곱 명의 제자가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내가 직접 목격했다”라고 말하는 제자도 있고, “절대 그럴 수 없다”라고 말하는 제자도 있었는가 하면, 반대로 이런 대화에 참여하지 못하는 제자도 있었습니다. 바로 베드로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스스로 예수님의 수제자라 생각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배반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설사 부활하셨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대면하는 것은 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바다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십니다. 죄책감과 자괴감에 빠진 제자들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그들의 모습이 달라집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리가 중요합니다. 어떤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사람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오늘 예수님은 우리들이 어떤 자리에 있기를 원하실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의 자리를 변화시키시는 예수님을 만나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21장 12~17절
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 광림교회 담임목사 김 정 석
kwanglim-sp@hanmail.net
첫째, 낙심의 자리를 기적의 자리로 바꾸십니다
디베랴 바닷가에 모인 일곱 명의 제자들은 저마다 깊은 고민과 좌절, 허무 가운데 있었습니다. 특별히 베드로는 낙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상심한 마음을 달래고자 그나마 자신있는 고기 잡는 일을 하기 위해 바닷가에 나가 그물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그물에는 해초와 조개껍데기뿐입니다. 쓸쓸한 빈 그물, 마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없는 베드로의 삶은 허무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 없이 무언가를 쫓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없는 것을 쫓아갈 때 남는 것은 허무함 뿐입니다.
모두가 낙심하고 있는 그 때, 한 남자의 음성이 들립니다. 날이 밝기 전 가장 어두운 때였기에 형체만 보일 뿐 그 음성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셨는데 그들의 손에는 빈 그물뿐입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음성입니다. 바로 제자들이 예수님을 처음 만나던 순간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입니다.
그 말씀대로 하자 그들은 153마리라는 엄청난 양의 고기를 잡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낙심 가운데 있을 때 우리를 기적으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이 경험한 진짜 기적은 많은 양의 고기를 잡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예수님을 보게 되고,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기적은 무엇입니까? 바로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이 시간 이 자리가 가장 귀한 줄 믿습니다. 만약 낙심의 자리에 있다면 그 자리를 기적의 자리로 변화시키시는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둘째, 회피의 자리를 회복의 자리로 바꾸십니다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저 숨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날 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때를 생각해보니 죄책감이 몰려옵니다. 어떤 난관에 부딪쳐도 그리스도를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 호언장담했었는데, 대제사장의 집 뜰에서 한 하녀의 별것 아닌 추궁에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확고했던 믿음, 충직했던 의리, 그것들이 바람 앞의 모래처럼 한 순간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다는 사실보다, 자신은 결코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부인했다는 사실에 실망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분노와 부끄러움, 더 나아가 자신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가장 큰 실수는 예수님을 부인했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연약함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신앙생활에 있어서 실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결코 자신은 연약하지도 실패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인간을 교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확신은 교만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남보다 자신이 더 나을 것이라는 확신, 자신의 믿음이 더 좋을 것이라는 확신, 이 모든 것은 교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은 믿음 없음이 아니라, 믿음이 좋다고 하는 교만에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교만한 우리의 마음, 실패로 인해 자신을 회피하고자 하는 마음에도 그대로 찾아와 주십니다.
우리에게 연약함이 있습니까? 회피하고 싶은 그 무엇인가 있습니까? 이 시간 주님께 그 모든 것을 내어드리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자리를 피하고 싶은 회피의 자리가 아니라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치유하시는 회복의 자리로 이끄시는 줄 믿습니다.
셋째, 포기의 자리를 사명의 자리로 바꾸십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제자들의 자리는 포기의 자리였습니다. 그 자리는 한탄과 한숨만이 오가던 자리였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어떤 일에 대해 포기할 때가 있습니다. 포기의 자리에는 열정도 없고 생명력도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포기의 자리에 찾아오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후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반하며 더 이상 제자로서의 모습을 포기했었는데, 예수님께서 다시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내 양을 먹이라”(요 21:15, 17)는 것이고 “내 양을 치라”(요 21:16)는 것이었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보스케”입니다. 이 말의 뜻은 “거저 주어라”입니다. 그리고 “내 양을 치라”는 헬라어로 “포이마이네”, 뜻은 “돌보라”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한 자, 회복되고 치유된 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새로운 사명이 맡겨져 있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주고 돌보는 삶’ 즉 사랑의 삶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사랑의 사명을 받은 베드로는 교회의 반석이 되었고,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하기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도마는 인도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창에 찔려 순교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생명과도 바꿀 수 있는 사명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이 질문에 “네,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여 새로운 사명의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