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현장
영성과 지성의 조화를 이뤘던 ‘한 책(성경)의 사람’
2024년 1월 14일
한국감리교회를 빛낸 해외선교사 (18)
권순정 목사(목회선교지원실)
로버트 알렉산더 하디 선교사
1890년 의료선교사로 파송된 하디는 1898년 미국 남감리회 선교부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신학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그는 늘 말씀을 가까이하며 묵상했던 ‘성경의 사람’이었습니다.
‘1903년 하디의 영적 각성’도 그가 기도회를 인도하기 위해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회개와 깊은 영적 각성을 통해 성령을 체험했을 뿐만 아니라 그 후, 더 깊이 성경을 묵상하고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성경을 독학으로 연구하였으며, 훗날 협성신학교(현, 감리교 신학대학교의 전신)의 성서신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45년의 한국 선교 기간(1890~1935)동안 그는 총 70종의 책을 저술하거나 편집했으며 한국 최초의 신학 전문지인 「신학세계」를 창간했고 그곳에 그가 게재한 논문은 156편에 달합니다. 그는 늘 성경을 가까이 했습니다. 사위였던 피셔(J. Earnest Fisher) 박사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기도와 성경을 읽는 일에 할애했으며 강의와 집필을 위한 시간 외에도 개인적인 경건생활을 위해 매일 성경을 읽었다고 합니다.
하디는 협성신학교의 교수와 교장으로, 초교파 신학교였던 피어선성경학원의 교수와 교장으로, 초교파 문서선교 기구인 조선예수교서회와 <기독신보> 발행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1903년 하디의 영적 각성은 기억하지만,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는 영적 각성 후 성경을 더 깊이 연구하며 묵상하였고, 목회자를 양성하는 일과 신학 연구, 그리고 문서선교에 온 힘을 다했습니다. 더 나아가 남·북 감리회의 합동운동을 지지하고, 장로교회와 감리교회의 연합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935년 은퇴할 때까지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했던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한국이름 하리영(河鯉泳)은 ‘헤엄치는 잉어’라는 뜻입니다. 1949년 6월 30일 향년 83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까지 은빛 잉어처럼 쉼 없이 헤엄치며 복음을 전했던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